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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6-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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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문턱에서 만난 시의 온기

[탐방]정호승문학관을 걷다

기사입력 2025-12-2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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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접어들수록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는 오래 걷는 일보다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더 그리워진다. 그러나 어떤 길은 추위 속에서도 사람을 붙잡는다. 문장이 곁에 있을 때, 풍경이 말을 걸어올 때, 걷는 일은 다시 따뜻해진다.

 



대구 수성구 범어천을 따라 걷는 길이 그러했다. 맑게 개인 하늘 아래 낮은 물소리가 이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겨울 햇살이 스며든다. 이곳은 정호승 시인이 자연과 인간과 문학을 배웠다고 말한 자리다. 그는 1956년부터 1968년까지 범어3동에서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내며 삼덕초등학교, 계성중학교, 대륜고등학교를 다녔다. 범어천은 그에게 문학의 고향이자 시의 모태였다.

 

 


걷다 보면 시인의 길이 시작된다. 120m 남짓한 짧은 산책로지만, 정호승 시인의 대표 작품 9편이 길을 따라 놓여 있어 발걸음은 자주 멈춘다. 시구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다시 물을 내려다보는 순간, 풍경과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숙제로 처음 썼다는 자갈밭에서를 떠올리면, 이 길을 오가던 한 소년의 시간이 지금의 풍경 위로 겹쳐진다.

 

 


산책로 끝자락에서 붉은 건물이 시선을 끈다. 범어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호승문학관이다. 옛 범어3동 행정복지센터를 리모델링해 2023년 문을 연 이곳은 대구 최초의 생존 작가 공립문학관이다. 지하 1, 지상 2층 규모의 건물 외관은 진한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이는 시인의 기억 속에서 여름마다 범어천 둑을 넘던 황톳물의 색이라고 한다. 건물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시처럼 서 있다.


문학관 지하 다목적홀은 강연과 시 낭독회, 북 콘서트가 열리는 공간이다. 전시를 넘어 시가 현재형으로 살아 숨 쉬는 자리라는 점이 인상 깊다. 문학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의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1층 북카페는 문학관의 숨 고르기 같은 공간이다. 차를 마시며 시집을 펼칠 수 있고, 창가에 앉으면 범어천의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문학관이 보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라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실감하게 된다. 정호승 시인의 시집뿐 아니라 다양한 시인들의 작품이 함께 놓여 있어, 시의 세계가 넓게 이어진다.

 

 


2층 전시 공간은 정호승 시인의 문학 여정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수성구에 기증한 육필 원고와 시집, 사진, 집필 소품 등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완성된 시보다 더 오래 눈길을 붙잡는 것은 수정 흔적이 남아 있는 원고들이다. 지우고 고친 자리마다 시가 태어나기까지의 고요한 싸움이 남아 있다. 한편에는 그의 시 약 80편이 노래로 작곡된 사실을 보여주듯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시는 종이 위를 넘어 소리로 다시 살아난다.

 

 


문학관 2층 벽면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다. 그 시를 내가 대신해서 쓸 뿐이다.”

정호승 시인의 이 말은 선언이기보다 위로에 가깝다. 시는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다는 믿음. 문학관은 그 믿음을 확인하는 장소다. 시인은 이곳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공유 공간이라 말한다.


 

 


문학관을 나서며 다시 범어천을 바라본다. 물은 여전히 그 옛날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춥다고 종종 걸음으로 걷는다. 하지만 이 길을 한 번 지나온 뒤에는 풍경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다. 문장은 마음의 온도가 되고, 시는 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김천의 겨울도 결코 가볍지 않다. 바람은 차고, 해는 짧다. 그럴수록 멀리 떠나지 않아도 마음을 덥혀 줄 공간이 필요하다. 정호승문학관에서 느낀 온기는 특정한 장소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 한 줄이 건네는 체온처럼, 그것은 일상으로 돌아와도 오래 남는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김천시민에게도 이런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바쁜 하루를 잠시 멈추고, 문장 하나에 마음을 맡기는 시간. 시는 삶을 바꾸지는 않지만, 삶을 견디게 한다. 이 겨울, 문학관에서 만난 조용한 온기가 김천시민의 일상에도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에디터: 梨泉 김윤탁

 

 

 

김대중 기자 (koreainews@naver.com)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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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시민
    2026- 01- 21 삭제

    김대중은 아직도 묵묵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