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을 살리겠다며 70억원의 혈세를 투입해 만든 김천시 대항면 ‘황녀의 마을’이 완공 12년 만에 사실상 폐허로 방치되고 있다. 농촌지역 자립기반을 구축하겠다던 야심찬 사업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입구부터 흉물로 변해가고 있다.
황녀의 마을은 김천시가 국비 49억원과 시·도비 21억원 등 총 70억원을 투입해 대항면 향천리·운수리 일대 2천여㎡ 부지에 조성한 농촌종합개발사업 시설로 2014년 완공됐다.
당초 숲속 환경과 흙을 소재로 한 테마형 체험공간을 표방했다. 체험관에서는 도자공예와 전통도예, 다도체험, 예절교육 등을 운영해 주민 소득을 높이고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현장을 찾아보면 사업의 내용에 앞서 왜 이곳을 사업 부지로 선택했는지부터 의문이 든다. 황녀의 마을은 직지초등학교에서도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마을 꼭대기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일반 관광객이나 체험객이 쉽게 찾아오고 오갈 수 있는 위치라고 보기 어렵다.
체험시설은 결국 사람이 찾아와야 운영될 수 있다. 특히 주민소득과 관광·체험을 목적으로 한 시설이라면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 지속적인 방문객 확보 가능성은 사업 추진 전에 가장 먼저 따져야 할 조건이다. 그런데 7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 과연 이 같은 입지 조건과 접근성을 얼마나 면밀하게 검토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모습을 놓고 보면 황녀의 마을의 실패는 운영 과정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사람을 불러 모아야 할 체험시설을 접근성이 떨어지는 산 중턱에 조성한 순간부터 오늘의 방치를 어느 정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사업의 첫 단추인 입지 선정부터 제대로 끼워졌는지 검증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 시설 입구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안내판은 내용을 제대로 읽기 어려울 정도로 낡아 있다. 입구에 설치된 망댕이가마는 제대로 활용된 흔적을 찾기 어려운 채 일부가 허물어져 있으며, 건물과 시설 곳곳도 파손돼 있다. 장기간 방치되면서 일부 시설물이 쓰러지고 허물어지는 등 훼손이 진행돼 안전점검까지 필요해 보였다.
더욱 아쉬운 것은 이런 상황이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22년 9월 김천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는 황녀의 마을을 직접 방문했다. 당시에도 사업 운영 과정에서 염색시설 문제 등을 둘러싸고 주민 간 갈등과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의원들은 당시 김천시와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로부터 사업계획과 추진과정을 보고받고 갈등 당사자들의 입장을 들었다. 이미 황녀의 마을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상당한 문제가 드러났던 셈이다.
그럼에도 지금 남은 결과는 사실상 ‘방치’다. 7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인 공공시설이 왜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는지, 애초 이곳에 시설을 조성한 입지 선정은 적절했는지, 사업계획과 수요예측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사업을 제안하고 추진한 주체와 이를 승인하고 예산을 투입한 행정기관은 무엇을 했는지 이제라도 따져봐야 한다.
특히 주민소득과 농촌 자립을 내세워 추진한 사업이라면 완공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누가 어떤 계획으로 사업을 제안했고, 누가 이 위치를 선정했으며 어떤 타당성 검토를 거쳤는지, 70억원이라는 사업비는 어떤 근거로 책정됐는지, 완공 이후에는 어떻게 운영·관리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문제는 더 커진다. 건물과 시설이 계속 훼손되면 결국 시민 세금으로 다시 보수하거나 철거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70억원을 들여 지어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도 문제인데, 나중에는 철거비까지 시민이 부담해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거액의 혈세를 들인 시설이 마을의 흉물로 남는 것은 지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책임과 대책을 함께 물어야 한다. 당시 황녀의 마을 사업을 주관하고 예산을 편성·집행한 과정은 물론 입지 선정과 사업 타당성 검토, 완공 이후 관리·감독까지 어느 단계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시간이 흘렀다고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담당자가 바뀌고 세월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것이 공공사업 실패의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판단이 있었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밝히고, 책임을 물을 사안이 있다면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는다.
행정이 더 이상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무작정 붙들고 있을 이유도 없다. 관련 법령과 절차에 따라 민간 활용이 가능한지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을 통한 공개 매각 등 새로운 주인을 찾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거 사업의 잘잘못을 밝히는 것과 별개로 지금의 방치를 끝내는 것은 현재 행정의 책임이다. 70억원짜리 시설을 더 이상 세월에 맡겨둘 수는 없다.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살릴 수 있다면 살려야 한다. 행정이 직접 활용할 방법이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더 이상의 혈세 낭비를 막고 황녀의 마을을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되돌려 놓는 길이다.